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 임대 제도를 둘러싸고 책임 범위를 두고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 임대 제도를 둘러싸고 책임 범위를 두고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 임대 제도를 둘러싸고 책임 범위를 두고 벌어진 법적 분쟁에서 법원이 의미 있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기존주택 전세 임대주택’에 거주하던 세입자가 자연재해로 파손된 주택을 수리하면서 비용을 부담한 사건에서, 법원은 LH 역시 해당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공기관이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실제 거주자의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A씨는 무주택 상태에서 생활하던 중 LH가 시행하는 기존주택 전세임대 지원 사업을 통해 경북 포항의 한 다세대주택에 입주하게 됐다. 해당 사업은 저소득층이 원하는 주택을 찾으면 LH가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이후 입주 대상자와 다시 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A씨는 이런 방식으로 해당 주택에 입주해 장기간 거주하며 생활을 이어왔다. 입주 당시 조건은 비교적 저렴했다. 입주자는 일정 금액의 부담금을 내고 낮은 월세로 주택을 이용할 수 있었고, LH는 임차인과 건물주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맡는 구조였다.
A씨는 이후 여러 차례 계약을 갱신하며 10년 넘게 해당 주택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가 닥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동해안 지역을 강타한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A씨가 거주하던 다세대주택 여러 동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건물 전체가 심각한 파손을 입었다. 주민들이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수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건물 전체 수리비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규모였고, 그 가운데 일부 비용이 A씨에게도 부담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A씨가 부담해야 했던 수리비 규모였다. 그가 실제로 부담한 금액은 205만 원으로, 이는 그가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납부한 임차료 총액보다 더 많은 수준이었다.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입주자에게는 매우 큰 금액이었고, A씨는 이 비용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그는 건물 소유주인 부동산 임대업체와 LH를 상대로 수리비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건물주였던 업체는 이미 파산 상태였고, 실질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은 LH뿐인 상황이었다.
LH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계약서에는 건물에 하자가 발생했을 경우 임대인인 건물주가 수리를 책임진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LH 측은 해당 조항을 근거로 “수리비 청구는 건물주에게 해야 한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계약서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LH의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LH가 건물을 임차해 다시 입주자에게 임대하는 구조인 만큼, 주택 보존과 수리에 필요한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였다.
결국 법원은 건물 소유주와 LH가 공동으로 A씨에게 수리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공기관이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운영하는 사업의 취지를 고려할 때, 실제 거주자가 주택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홀로 부담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또한 LH가 전대인 역할을 하면서 입주자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건물 보존과 수선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LH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면서 사건은 추가 법적 판단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