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의 안타까운 사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의 안타까운 사연
짧지만 날 선 이 한 문장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붙잡아습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내 최초의 기억은 할머니에게 밥그릇으로 머리를 맞은 엄마, 그런 엄마의 손을 끌고 보건소로 향하던 언니, 그 언니를 울면서 그 뒤를 따르던 나이다" 사연에 따르면 작성자 A씨의 엄마는 지적장애 2급이었습니다. 엄마는 어느 날 함께 살던 남동생이 실종된 후 중매를 통해 지적장애 3급의 아버지와 결혼하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은 뒤 장애가 있는 아들의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고, 손주를 낳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듯합니다. 그렇게 지능이 7세 정도인 엄마를 며느리로 들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못 알아들으면 때리고, 또 가르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엄마는 딸만 둘을 낳았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A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엄마는 셋째를 임신했지만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고, 사산된 아이가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던 엄마에게 밥그릇을 던졌습니다. A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그 시절만큼은 아직도 숨이 막힌다고 합니다.
A씨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500평 남짓한 밭이 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가 농사지은 작물을 할머니는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유일한 돈벌이였습니다. 다만 사실상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려받은 땅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도 없었고 일하다 다치는 병원비가 더 나왔습니다. A씨의 부모님은 모두 글을 읽고 쓰지 못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는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늘진 곳은 눈이 녹지 않았던 2월, 시장에서 낙상을 당한 할머니는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할머니는 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에게 욕하며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고, 결국 그녀는 다음날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우리 집안의 기둥이, 생리대 살 돈이 없는 자매가 몇 장 없는 수건을 잘랐다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은 악마가, 밑창이 해진 신발에 고무판을 붙여 신고 다니던 스크루지가, 그렇게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후, 은행원을 꿈꾸던 언니는 책가방이 아닌 작업복을 선택했습니다. A씨는 언니의 희생으로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했지만, 한 학기 만에 휴학하고 작은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전 직원이 30명도 되지 않았던 작은 회사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성적의 내가 대학교를 다니는건 사치였으니까"라고 합니다. 6~7년 전, 언니는 만나던 남자가 있었는데 남자쪽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