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단짝이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로 '어떤 것'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동안 친구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얇은 종이 한 장. 동시에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친구가 데려온 건 10년도 넘은 세월 만에 만난 어릴 적 나의 또 다른 친구였다.

바로 그때 그 시절 모든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종이 인형'이다.
지금은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추억이지만, 최근 들어 종이 인형을 찾는 이들이 속속 발견된다.
납작한 촉감이 매력적인 이 친구는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곤 했다.
아마 A4용지 사이즈만 한 종이 위 가득 준비된 자신의 옷을 입어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가위질해 서너 벌의 옷을 준비하면 본격적인 인형 놀이가 시작됐다.
공주가 되고 싶다던 친구는 핑크색 드레스를 골랐고, 용감한 경찰이 꿈이라던 친구는 활동성이 좋은 바지 차림을 골랐다.
조그만 손을 움직여 가벼운 그 친구를 조심스럽게 들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종이 인형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또 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받은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면 금세 종이 옷장을 꽉꽉 채울 만큼 예쁜 옷들을 사며 꽤 가성비(?) 높은 쇼핑도 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옷이 없으면 직접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의상 디자이너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가냘픈 종이 인형이 흐물흐물 해지면, 응급처방으로 책장에서 가장 무거운 책을 가져와 하루 동안 눌러두고 다음 날 다시 쌩쌩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